아나키즘

[펌]<소유란 무엇인가>발췌 -프루동

synergyMania 2015. 5. 20. 23:19

내가 "노예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리고 한마디로 답해야 한다면, "그것은 살인이다"라고 답을 할 터인데, 내 뜻은 즉시 이해될 것이다. 인간으로부터 사고, 의지, 개성을 박탈해가는 권력은 생과 사를 좌우하는 힘이며, 인간을 노예화시키는 것은 인간을 죽이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입증하는 데에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또 다른 질문, "소유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도 십중팔구 오해받을 걱정없이, 두번째 명제는 첫번째 명제의 변형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도적질이다"라고 비슷하게 답변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1793년의] 인권선언은 소유권을 인간의 자연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들 가운데 배치하였는데, 이 권리들은 다음 네가지이다. 자유, 평등, 소유, 안전. ... 이들 세가지 혹은 네가지 권리를 서로 비교해 본다면, 소유권은 다른 권리들과 닮은점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시민 대다수에게 소유권은 단지 잠재적으로, 그리고 빛을 보지 못한 잠자는 재능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 권리를 향유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유권은 자연권 사상과 어울리지 않는 모종의 거래와 변경이 용인된다. 즉, 실제로 정부도 재판소도 법률도 그것을 존중하지 않으며,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한결같이 그것을 헛된 것으로 간주한다.

 자유는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자유를 팔거나 양도할 수 없다. 자유의 양도나 정지를 목적으로 하는 일체의 계약, 일체의 계약조건은 무효다. 노예는 자유의 대지에 발을 내딛는 바로 그 순간에 자유인이 된다. 사회가 범죄자를 붙잡아 그의 자유를 박탈하는 경우,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범죄를 통해 사회적 계약을 위반하는 자는 모두, 스스로를 공적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는 타인의 자유를 침범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자유를 앗아가도록 만든다. 자유는 인간의 본원적 조건이다.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운 행위는 어떻게 영위할 수 있을 것인가?

 유사하게, 법 앞의 평등에는 제한도, 예외도 있을 수 없다. ... 이것은 안전권에도 동일하다. ... 소유권은 전혀 다르다! 소유권은 모든 사람이 떠받듦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승인하지 않는다. 법률, 도덕, 관습, 공적 및 사적 의식 모두가 소유권의 죽음과 파산을 획책하고 있다.

 ... 자유는, 인간에게 불가입성이 물질에 해당하는 것과 같은 것, 즉 존재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리이다. 평등은, 그것이 없고서는 사회 또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리이다. 안전은, 모든 사람이 보기에 그 자신의 자유와 생명이 타인의 것만큼이나 귀중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리이다. 이들 세가지 권리는 절대적인데 즉,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자신이 주는 것 만큼을, 즉 자유에는 자유, 평등에는 평등, 안전에는 안전 등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유권은 어원학적 의미 및 법률상의 정의에 의하면, 사회 외적 권리이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부가 사회적 부라면, 조건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할 것이며 따라서 "소유권은 사람이 재산을 가장 절대적인 방식으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 평등, 안전을 위하여 결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소유권을 위하여 결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소유권이 자연권이라면, 이러한 자연권은 사회적이 아니라 반사회적이다. 소유와 사회는 서로가 전혀 조화될 수 없는 것이다. ... 사회가 망하거나, 아니면 사회가 소유권을 파괴해야만 한다.

 상업을 말하는 자라면 누구나 동등한 가치의 교환을 말하는데, 이는 만약 가치가 동일하지 않으며 손해를 입은 편에서 그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교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상거래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업은 자유로운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한다. 강제력이나 사기를 통한 거래도 있을 수 있지만, 상거래라고 할 수는 없다.

 자유인은 자신의 이성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는 맹목적으로 열정을 좇지 않으며, 공포 때문에 위축되거나 방해받지 않으며, 그릇된 주장에 속지 않는 사람이다.

 따라서, 모든 교환에는 계약 당사자 누구도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혀서는 안된다는, 즉 정당하며 진실되기 위해서 상업은 모든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가 존재한다. 이것이 상업의 첫번째 조건이다. 두번째 조건은 그것이 자발적일 것, 즉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하여 갖은 고생을 다하며, 궁전을 짓고서도 마굿간에서 자며, 넉넉한 옷감을 짜고도 누더기를 걸치고 있고, 세상만물을 생산하고도 아무 것도 없이 지내는 문명사회의 노동자는 자유롭지 않다. 그의 고용주는 임금과 노력봉사를 교환한다고 해서 그의 동료가 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의 적이다.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나라를 섬기는 병사는 자유롭지 않다. 그의 동료, 상관 그리고 군사재판의 관료나 기구, 이들은 모두 그의 적이다.

 토지를 소작하는 농민, 자본을 빌린 제조업자, 통행세, 관세, 특허료, 면허세, 인두세, 재산세 등을 바치는 납세자, 그리고 이것들을 심화시키는 대의원, 이들 모두는 분별있게, 그리고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한다. 그들의 적은 소유자, 자본가 그리고 정부이다.

 실제로, 다음과 같은 명료한 주장 앞에서 어떠한 궤변, 어떠한 억지 선입견이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개별 점유는 사회생활의 조건이다. 소유의 5천년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소유는 사회의 자살이다. 점유는 법 안에 존재한다. 소유는 법에 위배된다. 점유를 지지하는 한편, 소유를 제압하라. 원리의 간단한 변경을 통해서, 당신은 법률, 정부, 경제와 제도를 변혁하고, 이 땅에서 악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점유권은 만인에게 평등하기 때문에, 점유는 점유자의 수에 따라 변하며 소유는 형성될 수 없다.

노동의 효과는 만인에게 동일하기 때문에, 소유는 외부의 착취와 지대로 인해 사라진다.

모든 인간 노동은 집단적 강제력의 결과이므로, 따라서 모든 소유는 집단적이며, 분할할 수 없게 되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동은 소유를 파괴한다.

모든 노동능력은 모든 노동도구처럼 축적된 자본이며, 집단적 소유이기 때문에, (능력의 불평등에 따른) 임금과 부의 불평등은 정의롭지 못하며, 따라서 도적질이다.

상업의 필수조건은 계약당사자의 자유, 그리고 교환되는 생산물의 등가이다. 그런데, 가치는 각 생산물에 드는 시간과 비용의 양에 의해 표현되기 때문에, 그리고 자유는 침해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는 권리와 의무가 평등한 것과 마찬가지로, 평등한 임금을 가져야 한다.

생산물은 생산물에 의해서만 구매된다. 그런데, 교환조건은 생산물의 등가이기 때문에 이윤은 불가능하며 정의롭지 못하다. 만약 이러한 기본적인 경제원리가 지켜진다면 빈곤, 사치, 억압, 악덕, 범죄, 기아는 우리들 사이에서 사라질 것이다.

인간은 선택에 의해 결합되기 이전에 생산의 물리적, 수리적 법칙에 의해서 결합된다. 그러므로 정의 즉, 사회법과 협의의 법은 조건의 평등을 필요로 하며, 존경, 우정, 감사, 칭찬 등은 모두 형평법 혹은 비례법에만 속한다.

자유로운 결합 즉, 생산수단의 평등과 등가교환을 유지하는 데 국한되어지는 자유만이 유일하게 가능하며, 유일하게 정의로우며, 사회의 유일한 참 형태이다.

정치학은 자유의 과학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는 어떠한 이름으로 위장할지라도 압제이다. 사회의 최고도의 완성은 질서와 아나키의 결합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출처 : 아나키 온라인 공동체 아나★클랜 Korean Anarchist network